쪽수의 변이 Mutation of Mass

 

 

 

역사는 반복한다

 

애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주일 시사자키 진행을 맡은 김용민입니다.

 

갑자기 이 대통령 생각이 납니다.

이 대통령은 교회 장로입니다.

이 대통령은 대표적인 친미주의자입니다.

이 대통령은 친일파와 손잡았습니다.

이 대통령은 정적을 정치적 타살했다는 비난을 듣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을 자극해 결국 도발하도록 조장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사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야당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정치는 날마다 꼬였습니다.

이 대통령 주변은 아첨꾼들로 들끓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니까 경찰을 앞세워서 가혹하게 탄압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그러다가 권좌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이 대통령은 해외로 망명하더니 그곳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맡게 됩니다.

이 대통령은 결국 국민들의 외면으로 국장이 아닌 가족장으로 쓸쓸하게 세상과 작별하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입니다. 현재까지는.

 

김용민 교수의 CBS 「주일 시사쟈키」 오프닝 멘트는 “역사는 반복한다”는 간단명료한 진리를 우리에게 재확인시켜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로 맞는 것만 같은 이 격언을 논증하기 위해, 우리는 멀리 청와대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우리 삶의 주변 역시 반복되는 역사 투성이다. 딱히 내가 부주의하게 살아온 것 같지도 않은데 우리는 화가 나게도, 가위를 또 잃어버리고, 핸드폰을 또 물에 빠뜨리고, 또 학사경고를 당하고, 일요일 아침 숙취에 고생하며 ‘아 내가 왜 또...’를 되뇌이고, 우리 오빠가 아닌 다른 ‘아는 오빠’와 (이번엔 안걸리겠지 하며) 또 사랑에 빠진 뒤 얼마 안 가 모든 것을 잃고 스스로에게 성질내곤 한다. 우리의 삶과 역사는 이제동의 뮤탈리스크나 호날두의 문전쇄도처럼, 알고 대비해도 자꾸자꾸 당하게 하고, 옛날의 짜증나는 경험을 ‘새로이 또’ 하게 만든다. 오늘 클럽에서 내게 작업을 걸었던 어떤 못생긴 남자의 국부를 걷어차 주었다고 해서, 다음 주말에 같은 일이 안생길거라는 보장이 있는가? 역사는 악질적인 애인, 군대고참이나 직장상사다. 그냥 살게 두면 개념 잃을까봐, 잊을 만하면 같은 일로 갈군다.

왕정이 붕괴된 프랑스 혁명 이후 인류의 역사는 주로 쪽수와 권력자의 대결이었다. 여기서 쪽수란 왕이 시키면 나가서 전쟁을 치르던 동원된 군인의 머릿수가 아니다. 권력자가 보살펴 주지 않는 자신들의 권익을 찾고자 나선 사람들, ‘권력에 맞서기 위해 가질 수 있는 힘이 뭐 없을까’ 고민하다가 쪽수로 밀어붙이기의 개념을 창안해낸 사람들의, ‘모여있음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힘’이 쪽수다. 시국집회, 파업집회, 김장훈씨 콘서트에 몰린 사람들의 모임도 모두 쪽수다. 물론 우리는 모두가 먹고 사느라, 노느라 바쁘다. 알래스카의 제이콥슨은 연어잡느라 바쁘고, 바누아투의 모타쿨은 딸들 먹일 야자열매 따느라 바쁘고, 샘물교회의 신자들은 개종시킬 무슬림들 없나 찾느라 바쁘고, 50센트는 트레이닝하느라 음악할 시간도 없이 바쁘며, UMC는 클러버들의 잡지에 사회학 나부랭이 떠들어서 분위기 망칠 궁리하느라 바쁘다. 이렇듯 개인의 삶과 개인의 시간은 모두에게 매우 소중하고, 괜히 동원당해 무리지어 뙤약볕에 앉아있어야 하는 예비군훈련은 짜증난다. 그런데 왜 우리들 가운데 일부는 종종 쪽수의 한 세포가 되어 촛불 든 좀비가 되었던 걸까. 모인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져서 나온 것도 아닐텐데. 49년, 29년, 22년 전에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고, 사람들은 싸우고 피흘렸으며, 그 때마다 상황은 잘 정리되고 우리에겐 훌륭한 지식이 축적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왜 또 모여. 벌써 2009년이다 지금이.

 

 

개미집의 개미, 제비집의 제비

 

오늘날의 우리나라 우리세대에게 있어 키보드는 나의 삶을 특징지워준다. 손오공의 수퍼보드와 용도가 비슷하다. 전투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세상을 탐험하려 해도 나를 표현하려 해도, 나를 나로서 살아가게 하려면 (마우스는 트랙볼이나 디지타이저로 써도 되지만)키보드 없이는 좀 힘들다.

 

키보드를 직업적이지 않은 이유로 다른 사람들 보다 좀 더 오래 붙들고 있는 사람들이라면(이들은 직업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자신의, 개인의 자유와 가치가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다. 엄마가 노크 없이 방문 여는 것만 해도 화가 나서 참을 수 없게 될 수 있다. 이렇게 생활하다보면 오프라인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떼지어 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도로를 막고 있는 일을 예쁘게 봐주기가 좀 그렇다. 아니, 모든 사람들의 ‘떼’가 다 우습게 보일 수도 있다.

 

무엇을 말하고자 거리로 쏟아져 나와 불법을 자행하는가? 니가 하는 말은 니 옆에 서 있는 사람의 주장과도 어긋나는 부분이 한 둘이 아닐 것이며, 결국 그건 같은 목소리를 낸다는 뜻도 아닌데? 사람이 같은 목소리가 어딨어. 꿍꿍이는 다 다르지. 왜 길에 나와서 고결한 척 하냐. 결국 너도 니 인생 하나 챙기기에 바쁜 일꾼 한 마리일 뿐이다. 대통령 욕하고 물러나라 그러면, 니가 대통령하게? 어디에 선동되어 그러고 있느냐. 우루루 몰려다니며, 같은 노래를 부르고, 경찰한테 들이대고, 살충제 뿌리면 흩어지고, 생각 없는 개미 집의 개미들 같으니.

 

옛 시대의 쪽수는 실제로 몇몇 키보드 워리어들의 위와 같은 생각과 일치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거리로 나와 민주주의를 외쳤지만 실제로는 동아리의 마음에 드는 여학생이 집회에 나오니까 멋있어 보이고 싶어 쇠파이프를 들고 있는 학생들도 있었고, 위정자들이 싫어 만든 학생운동 단체였음에도 그 내부에는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질서가 위정자들의 조직과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존재하기도 했다. 조선일보에 입사하는 것이 ‘조직에 대한 배신’이라고 일갈하던 학교 선배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답답함에 유두가 오그라들 지경이었다. 좀 더 지적이고 인간적인 표현이나 충고는 없었나? 그리고 그렇게나 열심히 집회에 참여해서 달리며 싸우던 내 친구들과 선배들은, 그리도 열심히 활동하던 에너지를 자신의 회사와 가족, 주식과 펀드 등의 재테크에 쏟아 부으며 지금 잘들 살고 있다. ‘투쟁의 선봉에 선 국문과’의 학생들이 투쟁 속에서 배운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회의가 안 생길 수 없다. 개중 돈을 많이 버는 몇몇은 매매춘도 곧잘 하고 내게 자랑도 한다. 어느 가게 초롱이가 서비스가 holy sh*t이라고.

 

19세기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구스타브 르 봉은, ‘군중은 이성을 무시하고, 지적수준이 현저히 떨어지며, 알 수 없는 구호에 현혹되어 무리지어 다니고,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은 채 폭력을 감행한다’며 쪽수의 개념을 저열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럴 만도 했다. 그가 목격했던 프랑스혁명 당시의 성난 군중들은 바스티유 감옥을 급습하여 억울하게 갇힌 이들을 풀어준 것과 같이 유명하고 멋있는 일 말고도, 귀족들과 기타 왕정에 협조한 많은 이들을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처형하였다. 인도주의적 법집행을 주장하며 단두대 사용을 제안한 기요탱도 이때 죽임을 당하였고, 열화학의 아버지 라부아지에도 처형되었으며, 그 외에도 많은 숙청의 대상들이 길에서 내장을 쏟으며 죽어갔다(군중들을 이것을 보고 즐겼다고 전해진다). 군중은 참으로 전쟁하는 개미들처럼 무섭다. ‘백해무익한 군중심리’에 대한 이러한 논의는 학계에서 약간의 논란이 있었지만 이내 인정받았고, 이것이 고전적인 군중에 대한 개념이 되었다. 다시 21세기의 대한민국으로 돌아오면,

 

이런 무시무시한 무식한 군중들 덕에, 퇴근길에 차를 몰고 귀가하던 중에 도로가 점거된 꼴을 보면 화가 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식들 잘 보살피면서 착하게 일한 만큼 먹고 살고 (지렁이들을 제외하고는 어디에도 피해를 끼치지않는) 제비집의 제비들처럼 살 수는 없나? 왜 나라의 어른들과 우리를 먹여 살리는 기업인들에게 대들고 **들이야! 주적에게 사주 받았냐? 나 집에 좀 가자! 마눌님이 일찍 끝난 날에 왜 늦게 오냐고 갈군단 말이다!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 내게는 없다! 왜들 모여서 이래? 1980년도 아니고 2009년이다 지금이.

 

21세기 대한민국 - 대중지성의 등장

 

2008년 6월 10일은 저 유명한 명박산성(a.k.a. MB Tower)이 서울시내에 등장했던 유일한 날이었다. 평일이었지만 공교롭게도 직장이 쉬는 날(그때 UMC/UW는 음악을 그만두고 월급쟁이 노릇을 하고 있었다)이었고, 다른 이유보다 그렇게나 자발적으로 많이 모인 사람들에게 쪽수의 한 마리로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이 생겨 잠시 광화문 앞에 들렀다. 학교 후배들을 몇몇 만났는데, 내가 다음날이 생일이라고 말하자 근처 베이커리에서 케이크를 사들고 왔다. 본의 아니게 전경과 전경버스, 그리고 컨테이너로 둘러싸인 서울시내 한복판의 도로에 앉아 밤 11시 59분에 생일파티를 하게 되었다. 김디지는 같은 날 무대에서 공연도 하고 시국발언도 하고 사람들을 이끄느라 애썼는데(다음 날 모 일간지에 김디지는 유명인사로, 나는 지나가던 시민의 한 사람으로 집회에 관해 인터뷰를 했던 내용이 실렸다), 나는 그런 일에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다. 수십만 명이 모여 있던 그 날 저녁의 자리가, 한두 사람의 연설과 구호로는 표현할 수 없는 다양성의 향연이기를 바랬다. 누가 ‘갑시다!’한다고 가는 것도 아니고, 누가 ‘화나지 않습니까?’한다고 화내는 것도 아닌, 모두가 다른 이유, 모두가 다른 소신으로, 같이 하는 건 모여 있는 것뿐인, 일관된 실체를 가려내기 어렵거나 그런 것이 아예 없는 그저 ‘쪽수’. 그리고 그때 모여 있던 사람들은 내 기대를 충족시켜 주고도 남았다. 아이를 들고 메고 끌고 나온 신혼부부들(새벽까지 남아계시던 경우의 애기들은 좀 불쌍했음), 코스프레 갤러들(여기서 대체 왜?), 소울드레서 회원 언니들(스타일들 좋으셨는데, 킬힐들이라 뛸 때 고생 좀 했을 듯), 밀리터리 갤에서 모인 예비군들(다 아는 사람들인 줄 알았더니, 서로들 잘 모르는 지 계속 서로 인사하고 있었다), 김밥 싸와서 나눠주던 아줌마들(한 군데에서 만든 게 아닌지, 배고파서 여러 줄 먹었는데 모두 포장과 맛이 달랐다), 쓸 데 없이 집회에서 생일파티나 하고 있는 나에 이르기까지. 10년 전의 집회와 비교하면 그 구성원의 다양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뚜렷했다. 그들이 모두 잘못된 가치관으로 모여 있다 하더라도, 그 책임을 그날 모였던 개개인 전부에게 따로따로 물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배후세력은 없었고, 그들은 이리저리 끌려 다닐 어수룩한 군중이 아니었다. 그냥 마포에 사는 UMC/UW(당시 30)씨 및 다른 모르는 개인들이었다.

 

  20세기 후반 민주화운동의 심장이자 영혼이었던 대학은, 이제 요즘 대학들의 주장대로 ‘고객무한 감동 실천의 장’, ‘100% 취업요람’이지 사회정화의 구심점은 아니다. 대신 그 역할은 인터넷으로 옮겨왔다. 그리하여 향상된 점이 있다면, 개인의 자유. 담배냄새 풀풀나는 헙수룩한 오빠들의 손에 이끌려 집회에 나갈 일도 없고, 머리 아픈 책들을 읽어가며 사회과학 세미나에 참여하라고 강요할 사람들도 없다. 내 가치관, 편향, 기분에 따라 오늘은 클러빙, 내일 오전은 쇼핑 저녁은 촛불 집회 참여가 가능해졌다는 얘기다. 신문을 읽고 ‘아 그런가 보다’하고 말던 시대에서 ‘이건 이렇지 않아?’라며 무수히 많은 불특정 다수와 서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게 된 기회, 인터넷 혁명은 이러한 계기를 제공해주었고, 길바닥 밑의 랜선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깔린 대한민국은 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키보드가 곧 과방, 동아리방, 세미나실이 된 것 이다. 물론 개인의 자유, 개인의 사유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가는 요즘 시대에도, 어떠한 촉매제가 없으면 사람들은 사회와 정치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지려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보기에

 

  이명박 대통령은 천사다. 실용정부가 우리에게 준 시련으로 인하여, 대한민국의 구성원 개개인은 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지성의 수준을 키워갔다. 이제 우리가 또 모여 거리에서 만날 일이 있다면, 그 쪽수는 예전의 쪽수와는 성질이 많이 다를 것이다. 괜히 마음에 안들어서 화부터 내려던 예전의 성급한 우리는, 개개인의 고뇌를 통해 점점 소신이라는 것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검역주권 상실, 신문사 방송겸영 허가, ‘강부자 내각’론, 용산 철거민 참사,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태들로 인하여, 나는 최소한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역사는 반복된다’는 사실 정도는 어렴풋이들 깨달았을 것이라고 본다. 좀 더 똑똑한 대중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을 제외한 모든 말들이 내 입을 통해서 나올 때

이 *, 혹은 이 **, 평상시에도 늘 하던 말에

하고 싶었던 모든 말들에 (access denied)

누가 노인네 아니랄 까봐 (access denied)

노동자들을 자른 게 너 이승희 사진을 자른 게 너

미군의 합법적 살인을 방치해 둔 것도 너야

근데 왜 내 입만 막어 My all (access denied)

All of the world I'm livin (access denied)

 

UMC/UW의 저 라임은 벌써 8년전에 쓰여진 것이다. 그런데 왜 저 내용과 비슷한 역사들은 사회에서 아직도, 여전히 반복되는가. 2009년이다 지금이.